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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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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쑤성은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성이다. 한국식 한자 독음은 감숙성이다. 약칭으로는 간(甘)이나 서량의 량에서 딴 량(凉), 룽(陇: Lǒng)이 쓰인다. 룽(陇)은 이 지역에 있는 유명한 산인 룽산(陇山)에서 따왔다. 성 정부 청사소재지는 란저우이다. 인구는 25,575,254명, 면적은 425,800km2이다.
성 이름의 의미는 이 지역 서쪽 끄트머리의 간저우와 쑤저우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성 모습이 이상하게 길쭉해 보이는데 동북방은 몽골고원이고 서남방은 티베트고원 권역으로 지리적 경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통로로 오아시스 도시가 여기저기 있는 사막지역과, 아직 사막이 덜 된 황량한 지역이 공존한다. 북동쪽에는 고비 사막이, 남서쪽에는 해발고도 5,000m대의 치롄산맥(祁連山)이 지나가며, 그 사이로 중앙아시아 지역과 중국 문화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루트인 하서회랑(河西回廊), 혹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이 이 간쑤성을 통과한다.
해발고도가 높고 내륙에 위치해 기후는 춥고 건조한 편이다. 성도 란저우는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고, 1월 평균기온은 -8.5℃, 7월 평균기온은 20.5℃, 연강수량은 245.9mm로 스텝기후에 속한다. 하서회랑 지역으로 가면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100mm 미만으로도 떨어져 완전한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인구 중 91.3%는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소수민족으로는 후이족, 둥샹족, 티베트족이 있다. 소수민족들 중 상당수는 성 남서쪽에 위치한 린샤·간난의 두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곳이다. 2019년 1인당 GDP는 5,083$로 중국 평균(10,276$)의 절반 정도였다.
||1. 개요[편집]
간쑤성은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성이다. 한국식 한자 독음은 감숙성이다. 약칭으로는 간(甘)이나 서량의 량에서 딴 량(凉), 룽(陇: Lǒng)이 쓰인다. 룽(陇)은 이 지역에 있는 유명한 산인 룽산(陇山)에서 따왔다. 성 정부 청사소재지는 란저우이다. 인구는 25,575,254명, 면적은 425,800km2이다.
성 이름의 의미는 이 지역 서쪽 끄트머리의 간저우와 쑤저우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2. 지리[편집]
성 모습이 이상하게 길쭉해 보이는데 동북방은 몽골고원이고 서남방은 티베트고원 권역으로 지리적 경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통로로 오아시스 도시가 여기저기 있는 사막지역과, 아직 사막이 덜 된 황량한 지역이 공존한다. 북동쪽에는 고비 사막이, 남서쪽에는 해발고도 5,000m대의 치롄산맥(祁連山)이 지나가며, 그 사이로 중앙아시아 지역과 중국 문화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루트인 하서회랑(河西回廊), 혹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이 이 간쑤성을 통과한다.
해발고도가 높고 내륙에 위치해 기후는 춥고 건조한 편이다. 성도 란저우는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고, 1월 평균기온은 -8.5℃, 7월 평균기온은 20.5℃, 연강수량은 245.9mm로 스텝기후에 속한다. 하서회랑 지역으로 가면 지역에 따라 강수량이 100mm 미만으로도 떨어져 완전한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인구 중 91.3%는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소수민족으로는 후이족, 둥샹족, 티베트족이 있다. 소수민족들 중 상당수는 성 남서쪽에 위치한 린샤·간난의 두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곳이다. 2019년 1인당 GDP는 5,083$로 중국 평균(10,276$)의 절반 정도였다.
3. 행정구역[편집]
4. 역사[편집]
고대에는 북부는 토하라계 월지인, 남부는 티베트계 강족이 주로 거주했다. 강족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되 인도유럽어족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민족으로 고대에는 중동의 밀, 양 및 고대 전차를 비롯한 청동기 문물들을 토하라인을 통해 한족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흉노 연맹이 이 지역의 월지를 축출한 이후 한나라는 흉노 연맹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이 지역의 강족들을 정복하고[2] 한족 농민들을 정착시켰다. 다만 토하라인의 영향력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노수호도 많았고 둔황의 경우에는 명칭 자체부터 토하라에서 기원하였다.[3]
한무제의 서역 원정 이후 실크로드길에서 장안을 출발해 중국 쪽 시작점 부분으로 번영했다. 몽골고원과 티베트고원에 끼인 좁고 긴 지역이라 하서주랑, 하서회랑이라고 불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서량(西涼), 후한 13주 기준으로는 양주(凉州)라고 불리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삼국지로 유명한 이 지역 군벌로 마등과 마초, 한수, 동탁 등이 있었고 강족 등 서융 기마민족의 근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서안 주변 지금의 섬서성 지역인 옛날 관중 땅과 배후지인 서촉(西蜀), 즉 지금의 쓰촨성, 충칭시, 윈난성 등을 합치면 옛 진나라의 강역과 한고조 유방이 초한전쟁 시기에 일어났던 지역이 된다.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왕조들이 차지했으나 송나라 등 국가는 일부 지역을 차지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한족들은 종종 티베트계 부족과 동화되어 반란에 합류하는 일도 많았다.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나 유구르족이 세운 하서회골 등이 유명하다.
중앙아시아과 중국과의 통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티베트 (칭하이성과 쓰촨성 서부 포함.)와 동투르키스탄(알티샤르)과 몽골(내몽골, 외몽골과 중가리아, 부랴티야)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영토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쓰촨성 서부의 티베트-버마계 부족들은 무역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기보다는, 간쑤성 북부의 내몽골, 서남부의 티베트 고원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거대한 자연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통로를 지나는 간쑤성의 중요도는 실크로드 무역에 있어서는 필수였다. 하서회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 게다가 버마를 통하는 남쪽은 차마고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무역을 하긴 했지만 여기도 히말라야 못지 않은 자연 장벽이라는게 함정. 쓰촨성과 인도를 잇는 육로 무역은 원나라 때 무슬림들이 이 지역에 대거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유기에서 파초선으로 부친 화염산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4] 이 지역은 실크로드 무역이 번영하던 당시에는 비교적 부유하고 화려한 역사를 지닌 장소였다. 지역 소재 문화재 중에서 세계 문화유산인 막고굴이 가장 유명하다.
서하 때는 실크로드로 흥했으며, 송나라(특히 남송) 시기 이후에도 강남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서하 멸망 후 간쑤성은 실크로드 육로 무역이 쇠퇴하고 가뭄이 지속되면서 명나라 시기엔 극빈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화제국으로서는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간쑤성에는 후이족 인구 외에도 명나라로 귀순한 무슬림 민족인 살라르족, 둥샹족이 둔전을 하며 이 지역을 몽골족으로부터 방어했으며, 유고족, 보안족 및 하미에서 피난 온 불교도 위구르인 난민 여러 민족들도 같이 살았다.
청말에는 마화룡이 지휘하는 후이족들이 봉기했다가 좌종당에게 진압되고 이후 이 지역에 대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상당수의 후이족들과 살라르족이 티베트 암도 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중국은 암도 지역을 간쑤성에서 분리하여 칭하이성을 신설한다. 유고족은 암도 지방 티베트인들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었으나 몽골계 보안족은 19세기 혼란기 와중에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5. 역대 영도인[편집]
6.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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